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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고 싶어?

Ode to love 2021. 5. 4. 02:28

목표를 정하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쉽게 포기할 줄 몰랐다. 강한 충동으로 하고 싶은 걸 정하고, 충동에 의한 선택이 나쁘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앙다물고 결과를 내곤 했다. 그렇게 충동과 오기, 자존심으로 일궈온 나의 발자국들. 그리고 그 발자국들이 이끈 지금, 이 곳에서, 난 조금 달라졌다.
성장하며 누구나 조금씩 성격이 바뀐다. 하지만 2019년-20년에 걸쳐 겪어야 했던 세 번의 이별은 나라는 정체성에 영향을 주었다. 부정적인 영향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꽤나 이상주의적이고 순수한 낭만을 꿈꾸던 나는, 스스로의 감수성을 조금 부끄러워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그 점이 강점임을 인지하고, 그를 살릴 수 있는 예술의 길을 택했다. 예술 작품 속의 주인공은 나처럼 유약하고 따뜻했고, 이런 이들이 주인공이라면, 예술은 이 가치를 알아주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해 받지 못해 외로웠던 시간을 채워준 작품을, 나도 만들고 싶었다. 내가 받은만큼의 위로를 줄 수 있는 삶이 너무 멋져 보였다. 그렇게 강한 충동이 다시 찾아왔고, 2년에 걸쳐 신중히 내 충동을 점검하고 시험했다. 시험을 통과한 충동을 조심스레 주위에 꺼냈고, 어느새 그건 내 신념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카코포니는 엄마의 죽음으로 예술을 시작했다고 한다. 난 반대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한 때, 난 27 늦깍이 예술 입문자였다. 상황이 안좋아졌으니 얼른 성장해서 성공해야겠다는 순진한 다짐을 했다. 스스로에게 5년의 기한을 줬고, 학업과 집에 쏟을 시간을 배분했다. 엄마는 5년이 아니라, 1년만에 떠나셨다. 그리고 난, 다시는 순진한 다짐을 하고 싶지 않아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만들던 작품이 나름 좋은 성과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기쁨은 너무 짧았다. 작품을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사람이 보지 못하는데,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다 시시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눈을 뜨는 매일 아침이 지옥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차츰 허무감에서 벗어나 회복을 했다. 남은 가족과 친구들의 과분한 애정 덕이다. 그래서 내겐 사랑하는 이들과의 일상이 가장 중요해졌다. 예술가의 길은 분명 남들과 다른 길이고, 외로움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목표라면 택해서는 안된다. 예술의 길을 가는 과정에서 여건에 맞게, 할 수 있는 만큼을 할 뿐, 최우선은 작업이다.
예전 같으면 갈림길 앞에서, 내 의지의 불충분을 따져봤을 것이다. 두려워서 하지 말아야 할 이유, 성공할 수 없는 이유 등을 찾는 게 아닌지 스스로에게 엄하게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알고 있다. 그 전에, 가장 정확한 답을 들어야 할 질문을. 그래서, 하고싶어? 라는 질문.
답은 노.
완전히 놓겠다는 건 아니다. 그저 지금 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내 인생에서 작업을 결코 떼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하고 싶은게 많은 나는, 그 때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즐기려 한다. 원대한 목표로 작업을 하기보단, 나의 작업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선에서 하려 한다. 다행히 복이 많고 가진 게 많아 웬만한 어려움도 즐기려면 즐길 수 있다. 가진 건 돈이라기보다, 가장 못나고 힘들 때에도 곁을 지켜줄 이들이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니, 어쩌면 또 인생의 큰 방향이 정해질 이 시기를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이젠 조금 덜 엄격하게, 더 솔직하게 내 마음에 귀 기울여 따르는 거니까. 새로운 길에는 또 새로운 즐거움이 있을테니까.